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이와 시대 (문단 편집) == 연호 발표 == || [[파일:레이와 아저씨.jpg|width=100%]] || || [[2019년]] [[4월 1일]] 새로운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는 [[스가 요시히데]] 당시 [[내각관방장관]]. [br] [[헤이세이 시대]]에서 [[레이와 시대]]가 됨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GFU9-8jQ2Nk)] }}} || || [[2019년]](헤이세이 31년) [[4월 1일]], 일본 새 연호 발표 중계 장면 || >'''{{{#!html 新しい元号は、「令和」であります。}}}''' >새로운 연호는, '레이와'입니다. >---- >'''[[스가 요시히데]] 당시 [[내각관방장관]]의 새 연호 발표'''[* 연호 발표는 일반적으로 [[내각관방장관]]이 직접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매스컴 집중도가 엄청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일시적으로 [[내각관방장관]]의 지지도가 급등하곤 한다. 더욱이 '포스트 아베'라는 차기 총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 현 일본의 상황이 연호 발표와 맞물려 차기 총리 후보군에 없던 당시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물론 연호 발표에 따른 대중 각인효과도 있겠지만, 관료로서의 뛰어난 능력과 별다른 스캔들이 없던 청렴함이 이번에 각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미 [[오부치 케이조|선례도 있다]]. 그리고 [[2020년]] 9월, [[아베 신조]]의 뒤를 이어 [[일본]] 제9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총리]]가 되었다.] [[2019년]](헤이세이 31년) [[4월 1일]] 오전 9시 30분에 수상관저(내각총리대신 관저)에서 '연호에 관한 긴급간담회'를 개최하여 전문가 한 사람씩 의견을 들어 40여 분 만에 끝났다.[* [[https://mainichi.jp/articles/20190401/k00/00m/040/023000c|(간담회에 참여한 전문가 명단)]].] 오전 10시 20분에 중의원 의장 공관에서 중의원과 참의원, 정부의장으로부터 의견을 들었고, 이후 총리 관저에서 11시부터 15분간 전체 임시각료회의를 열어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최종적으로 공식 결정했다.[* [[https://www.nikkei.com/article/DGXMZO43166560R00C19A4000000/|#]].] 같은 날 오전 11시 42분경, 당시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일본]]의 총리관저에서 새로운 연호를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발표 3일 전에 [[내각관방장관]]은 연호 발표 방식에 대해서 [[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 발표(당시 오부치 게이조 내각관방장관의 연호 발표) 때를 참고할 것이라고 적극 밝혔고, 실제로 [[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平成) 발표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호 선정 과정은 공식적으로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본 언론들이 관계자들을 통해 유출해서 보도한 바에 의하면, [[일본서기]]와 [[시경]]을 공동 출전으로 하는 '''고시(広至)''', 일본 고전을 출전으로 하는 '''에이코(英弘)'''와 '''[[레이와 시대|레이와]](令和)''', 6세기 중국의 시문집 『문선(文選)』을 출전으로 하는 '''반나(万和)''', 중국 고전을 출전으로 하는 '''규카(久化)'''와 '''반포(万保)'''까지 총 6개 안이 최종 후보에 올랐는데, 최종적으로 [[만엽집]]을 출전으로 하는 '''레이와(令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종이 한 장에 각 안의 출전을 적어 [[50음도]] 순으로 나열하여 제시했다고 한다. 즉, 채택된 '레이와' 연호는 제시된 후보들 중 제일 마지막에 있었을 것이다.]를 선택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헤이세이]] 연호 제정 당시에도 일본 고전에서 따오는 방안이 나왔지만, 최종 후보에서 모두 탈락했다.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총리]]는 새 연호 발표 직후 실시한 담화에서, "레이와(令和)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서로 모아서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자'는 의미이다. 문화나 자연과 같은 우리 나라([[일본]])의 특색을 다음 세대에 이어나감과 동시에, 혹독한 추위 뒤에 피는 [[매화나무|매화]]처럼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과 함께 각자의 꽃을 크게 피울 수 있는 그런 일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연호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https://nlab.itmedia.co.jp/nl/articles/1904/01/news090.html|#]].] [[일본 정부]]는 [[연호/일본|일본의 역대 연호]]들이 [[사서삼경]]이나 [[사기(역사책)|사기]] 등 [[중국]] 고전에서 따온 것과 달리, 사상 최초로 '일본 고전(만엽집)'을 출전(出典)으로 삼은 연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홍보했다. 이를 두고 일본 내부에서도 아베 총리의 국수주의적 가치관이 반영된 결정이란 분석도 있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888379.html|#]] 그러나 상술하였듯, 발표 직후 '해당 구절이 사실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 [[후한]] 시대의 [[장형(후한)|장형]]이 지은 『歸田賦(귀전부)』에 「仲春'''令'''月、時'''和'''氣淸」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令', '和' 두 글자가 모두 등장할 뿐 아니라 문장의 구조나 내용까지 거의 같다.[* 해당 구절의 풀이는 '초봄의 길한 달, 시절 평온하며 기운 맑다.'이다. '중춘(仲春)'은 초춘과 마찬가지로 초봄, 2월이라는 뜻이 있다.] [[https://togetter.com/li/1333750|#]]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32&aid=0002932112|##]] 귀전부가 수록된 『문선(文選)』은 만엽집(8세기 말 추정)보다 200년 정도 이른 6세기에 [[소량]]의 [[소명태자]]가 간행한 시가집이다. 문선은 당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널리 읽었고, 만엽집도 문선의 영향을 받았음은 일본 한문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인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448707|#]] [* 사실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중국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경우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 일본만 하더라도 역대 천황들이 써온 모든 연호들은 물론 하다 못해 중국 문화의 영향이 줄고 일본 고유 문화가 꽃피우게 된다는 헤이안 시대의 겐지모노가타리부터 에도 시대 가부키까지 일본 고유 문화만 소재로 차용하지 않고 중국 고전이나 고사에서 소재 가져온 작품도 만만치 않게 많다.] 새로운 연호 알파벳의 이니셜은 '''R'''이다. [[일본]]은 [[연호/일본|연호]]를 알파벳 약칭으로 대문자 1글자씩 쓴다. '''M'''([[메이지 시대|메이지]]), '''T'''([[다이쇼 시대|다이쇼]]), '''S'''([[쇼와 시대|쇼와]]), '''H'''([[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와 겹치지 않게 한다는 사회적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R'''로 쓸 수 있는 점도 고려하여 레이와(令和)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8&aid=0004197343|선정]]했다고 한다.[* [[일본어 로마자 표기법]]상 L, Q, V, X 같은 문자는 안 쓸 테고, 그러면 앞으로 대략 20대수가 지나면 더이상 쓸 [[알파벳]]이 없다. 다만, '20년대'라는 용어가 과거엔 [[1920년대]]를 의미했지만 현재는 [[2020년대]]를 의미하는 것처럼 100년 정도의 텀이면 중복되는 [[알파벳]]이 있다 한들 일생상활에선 큰 불편은 없다. 하물며 연호의 알파벳을 최대한 겹치지 않게 적절히 안배한다고 했을 때 [[천황|덴노]] 한 명당 재위 기간을 30년씩으로만 잡아도 20대수면 '''600년'''이라는 긴 세월이므로 알파벳 중복 문제는 거의 신경쓰지 않아도 될듯.] 당시, 발표 이후 [[나루히토]] 황태자가 새로운 '''[[천황]]'''으로 즉위하기까지의 약 1개월간, 일본 내 각 기관 전산 시스템이나 문서[* 특히,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주로 쓰는 [[도장(도구)|도장]]이나 [[달력]], [[팩스]] 등에도 연호가 꼭 들어가기 때문에 필요하고 정말 중요하다 볼 수 있다.] 등의 [[연호]]를 수정하는 작업이 엄청 필요하며 중요하다. 1989년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한 때와 마찬가지로 이 업무에 소요되는 비용은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레이와 시대부터 행정 전산 시스템 상의 공문서에는 [[서력기원|서기]]만을 사용하되, 종이로 제출 및 보관하는 공문서에는 [[연호]]와 [[서력기원|서기]]를 병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2019년]], 일본 보도에 따르면 총무성이 [[2019년]] [[5월 1일]]까지 전산 행정 프로그램을 [[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교체하는 작업을 끝내겠다고 발표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실제로 새 연호가 적용된 이후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외무성]]이 [[2019년]] [[5월 1일]]부터 [[서력기원|서기]]만 사용한다고 밝히고, [[운전면허/일본|일본 운전면허]] 연도 표기법은 [[2019년]] [[5월 1일]]자로 [[연호]]와 [[서력기원|서기]] 병기로 전환되는 등, 부서에 따라서 [[연호]] 혹은 [[서력기원|서기]] 단독 사용이나 병기로 나뉘는 것 같다. 민간기업이나 일상생활에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서력기원|서기]] 대신 [[연호]]를 많이 사용할 듯하다.[* [[https://youtu.be/L_EN9UWrnMw|#]]. 예시) 도쿄 도의 행정문서.] 일본수화연구소에서는 연호 「레이와」를 표현하는 [[수어]]도 만들었다. 연호와 마찬가지로 수어 선정 방식 역시 연구원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한다.[* [[https://youtu.be/qLzqgKZmYb4|#]].] 표현 방법은 '오른손으로 꽃봉오리가 살포시 피는 동작을 하는 것'이다.[* [[https://www.newsigns.jp/s/2724|이곳]]에서 자세한 수어 동작을 볼 수 있다.] [[2019년]](헤이세이 31년) [[4월 30일]]인 [[헤이세이 시대]](平成時代)의 최후 마지막 날, [[일본]] 전역에서는 흡사 [[12월 31일]]의 새해 전야 송별회와 같은 축제가 열렸다. 사람들은 저녁부터 [[시부야]] 등의 주요 도시의 번화가에 모여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순간을 담으며 새로운 시대인 [[레이와 시대]]를 맞이했다. 수많은 인파가 모인 [[시부야]] 교차로에서는 새해 카운트다운 처럼 레이와 카운트다운 이벤트가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수많은 인파와 매스컴들이 몰렸지만 어떠한 이벤트도 없었다. 인파가 몰려 혼잡도가 극심해진 [[시부야]] 교차로에 경찰이 투입되어 교통정리를 하며 '이벤트가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였고, 사람들이 뭔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주시하던 커다란 디스플레이마저 꺼버렸으나 경찰의 투입으로는 역부족이였는지 그야말로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버렸다. 설상가상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횡단보도까지 통제하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레이와 시대를 그대로 맞이하였으며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뜨거운 함성을 지르며 레이와가 된 후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마주오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축하해줄 정도로 달아오른 축제 현장 분위기였다. [[시부야]] 상점가에는 평시 저녁에면 문을 닫는 음식점, 술집 등은 레이와 원년(신연호 개원) 기념으로 밤새도록 영업했다.[* 원래대로면 [[연호]]가 바뀌는 날은 곧 덴노가 사망한 날이라는 뜻이므로 나라 전체가 가라앉은 분위기여야 더 자연스럽고, 실제로 [[쇼와 시대|쇼와]]에서 [[헤이세이 시대|헤이세이]]로 바뀌던 때에도 그랬다. 수백 년 만에 하는 생전 퇴위였기에 밝은 분위기가 가능했던 것.] [[오사카]] [[도톤보리]]에서는 에비스바시다리에서 도톤보리 강에 [[다이빙]]하는 세레모니도 있었으며, 당일 한 남성이 다이빙을 하다가 지나가는 배 위로 떨어져 부상당하는 사고도 있었다. [[2019년]](레이와 원년) [[5월 1일]], 레이와 시대의 첫날에는 각 뉴스와 방송 프로그램에서 레이와 연호를 맞은 각 지역 사람들의 반응을 보도했다. 또한 레이와 시대 첫 결혼식, 첫 출국, 첫 출생아 등에 대해서도 특집방송으로 전격 보도했다. 프로 스포츠 시즌 중에 개원한 특성상 [[야구]]의 레이와 시대 첫 홈런, [[축구]]의 레이와 시대 첫 골 등도 함께 보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